소품집ㅣ이문세外,제작,참여앨범ㅣO.S.Tㅣ옛사랑 사진자료ㅣ영상자료ㅣ기사스크랩 공지사항ㅣ이영훈글터ㅣ게시판ㅣQ&Aㅣ감상후기 방명록
 
 
 
 
 
이 름
  이영훈, LEE YOUNG HOON  
출생ㅣ사망
1960년 3월 6일ㅣ2008년 2월 14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가족관계
부인, 아들 1  
가요계 데뷔
'난 아직 모르잖아요' 작사/작곡 (1985년)  
수상 경력
제 2회 골든 디스크 대상 / 작곡가상 (1987년)
골든디스크 연 3회 수상 (1986년~8년)
 
주요 경력
이문세 3, 4, 5, 6, 7, 9, 12, 13집, 캐롤집등 프로듀서 및 작사/작곡
이영훈 소품집 1, 2, 3, 사랑이 지나가면 프로듀서
이광조, 이은저, 유열, 박소연등 앨범 프로듀서 및 작사/작곡
‘The Story Of Musicians’ 옛사랑 1, 2 프로듀서
각종 영화, 드라마 주제음악(O.S.T)외 다수
 
 
 
 

곡가 이영훈(1960년 3월 6일 서울 출생)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첫인상은 가수 이문세다. 작곡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문세의 얼굴과 오버랩 되어 버릴 정도다. 이문세를 가수로서 완성시킨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서부터 7집 '옛사랑'에 이르는 발라드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고 화려한 색채감으로 이문세가 누린 전성기의 영광 역시 그가 작곡가로서 이룩한 최고의 성지와 일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를 표면적으로 '발라드 작곡가'라는 편견에 이르게 하지만, 이문세와의 연합전선을 차지한 작품 목록을 본다면 그렇게 쉽게 좁은 영역으로 그를 밀어 넣지는 못한다. 특정분야(댄스 혹은 발라드)에만 전문성을 보이는 대부분의 작곡가들의 제한적인 특성보다는 다채로운 장르적 혼용을 보이기 때문이다. '80년대를 넘어오면서 그가 대중 음악에 끼친 공로는 역시 이문세로 대표되는 '80년대식 발라드'를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곡'을 위해 나머지가 들러리가 되는 앨범 작업 풍토를 개선한 점, 이범희 이후로 희미해져가던 작곡가의 힘을 다시 인식시킨 것 역시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는 사실 연극, 방송, 무용음악등을 만드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 속해 일하던 뮤지션이었다, 그러던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 단편 영화음악을 맡으며 대중음악으로의 태동을 시작하게된다. 이듬해 '신촌블르스' 엄인호의 소개로 가수 이문세를 만나 본격적으로 대중 음악 작업에 착수한 그는 1985년(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휘파람''소녀'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쳑하였고 1987년(4집)에는 '사랑이 지나가면''이별이야기''그녀의 웃음소리뿐'등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그해 골든 디스크 대상/작곡가상을 수상하고 최고 작곡가로 우뚝선다. 150만장이 팔린 3집이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신호탄이었다면, 무려 285만장의 판매기록을 수립한 4집은 그때까지의 사상 최다 음반 판매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88년 그의 모든 역량이 녹아든 명반 이문세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장에 달했으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광화문 연가''붉은 노을'등 앨범에 수록된 거의 전곡을 10~20대의 입에서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이 앨범으로 이문세는 골든 디스크상 3연패를 이룩하게되었고 그가 제시한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그때까지 라디오를 점령했던 팝송프로그램들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가요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되는 혁명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작들에서 비해 다소 주춤했던 6집과 훗날 이곡의 가사를 쓰고 난 후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라고 자평한 '옛사랑'이 수록된 7집까지 함께 해왔던 이문세와 잠시 떨어져서 그는 자신의 개인 작품집에 몰두한다. 러시아로 건너가 볼쇼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소품집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1993년 애절한 스트링 선율이 돋보이는 1집을 필두로 이듬해 이문세의 히트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2집을 내고 이 앨범들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음악박람회인 미뎀(MIDEM)에 출품, 자신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까지 경주했다. 그해 세번째 앨범이 마저 나오며 소품집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 세장의 음반은 1997년에 한꺼번에 다시 묶여져 재발매되었다.)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시회를 개최했던 고 박건희가 디자인한 이 소품집에서 그는 발라드 음악이 이룩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창출하며 거장으로 가는 길에 여러 발걸음을 보탰으며 선율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맘껏 실험했다. 그가 품었던 무대는 대중 음악의 좁은 지평이 아니라 BGM의 넓은 들판이 아니었을까?

와 더불어 이민용 감독과의 인연속에 <개 같은 날의 오후>,<인샬라> 등의 영화 주제음악을 만들며 스코어 음악에 다시 일가견을 보이기 시작했고, 1994년에는 MBC 창사 특별기획 드라마 <까레이스키>를 비롯해미니시리즈 <사랑을 기억하세요?> 수준작 <산>의 주제음악등을 만들었다. 이문세를 만나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7년 당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그와 선두 다툼을 벌이던 이광조의 앨범을 기획해 '세월가면'을 널리 히트시킨 이후, 오직 이문세에게 독점?되어 다른 가수들과는 많은 작업을 하지 못했던 그가 소품집에서는 권인하, 송재준, 드라마 <산>OST에서는 전선민, 이욱현등의 신인에게 보컬을 맡기며 새목소리로의 신선한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이 변화들은 신인 여가수 이은저의 앨범과 유열의 7집 앨범 프로듀싱에까지 이른다.

년대 이후의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문화에 밀린감이 없진 않지만, 그는 7집이후 끊겼던 이문세와의 작업을 재개해 '영원한 사랑'이 수록된 9집과 공연 실황(LIVE) 앨범 및 캐롤 앨범을 비롯 이소라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슬픈 사랑의 노래'가 수록된 12집,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수록된 13집까지를 함께 했다. 2000년 들어 자신의 20년 음악을 정리하는 차원으로 디지털로 예전의 히트곡을 총망라한 <OLD AND NEW>와 소품집 <사랑이 지나가면(1993~2003)> 이 2장의 앨범을 내놓았고, 이민용 감독의 <보리울의 여름> 영화음악을 끝으로 잠시 음반활동을 접고 호주 시드니를 오가며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자신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뮤지컬(가제-광화문 연가) 대본을 써가며 구체화하기에 이른다.

후 대장암 진단이 내려지고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던 2006년 말 대음악 프로젝트 <The Story Of Musicians - 옛사랑1, 2> 음반을 기획,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히트곡들은 물론 숨겨진 보석 같은 노래들을 재해석하여, 이문세가 아닌 다양한 장르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에게 부르게함으로써 듣는 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였다. 특히나 이 앨범은 매번 각 가수가 '알아서 별개로 녹음'하던 것과는 달리 그의 지휘아래 일관된 색조를 유지하며 각 곡의 특성을 살려내었다. 병마와 싸우며 탄생시킨 필생의 역작(力作)인셈이다. 그리고 그해 실질적 유작앨범인 박소연 1집 '별과 바람의 노래' 음반을 마지막으로 그토록 원하던 뮤지컬을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겨둔채 2008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날 새벽, 많은 이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짧은 49살의 生을 마감하게 된다.

지운(trajanus1126@naver.com)님의 글에서 발췌+덧붙임...[관리자]